‘에벤에셀’, 들어 보셨나요? ‘에벤에셀’은 성경 사무엘상 7장 12절에 등장하는 고백으로,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풀면 ‘도움의 돌(Stone of Help)’이라는 뜻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돌을 세우며 고백한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에벤에셀’을 형편이 나아진 후 고백하는 감사로 기억하지만, 성경 속 진짜 에벤에셀은 우리가 영적 맹인이 되어 하나님의 손길을 스쳐 지나치던 바로 그 패배의 자리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자리’를 진짜 도움의 자리로 바꾸는 믿음의 안목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비극의 시작: 이름만 ‘에벤에셀’이었던 곳
성경에 ‘에벤에셀’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무엘상 4장입니다.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도움의 돌’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뜻 무색하게, 이스라엘은 대패했고 하나님의 언약궤마저 빼앗겼습니다.
이름은 도움의 자리였으나, 결과는 철저한 패배와 수치였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그곳의 이름이 가진 ‘믿음의 시각’을 상실한 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2. 왜곡된 신앙: 하나님을 부적으로 삼다 (Before)
패배 후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왔습니다. “이곳이 에벤에셀이니 법궤만 오면 승리할 것”이라는 왜곡된 자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닌 ‘미신’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죄와 우상숭배는 회개하지 않으면서, 내가 정한 길에 하나님이 무조건 도우셔야 한다고 하나님을 조종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늘 준비되어 있었으나, 사람은 도움을 받을 영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영적 안목이 닫히자 에벤에셀은 그저 패배와 후회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3. 영적 반전: 미스바의 회개와 진짜 에벤에셀 (After)
20년이 흐른 후, 사무엘상 7장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모여 우상을 버리고 눈물로 철저히 회개합니다. 중심이 하나님께로 돌이켜졌을 때,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왔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레를 발하셔서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승리 후 그 자리에 다시 돌을 세우고 똑같이 ‘에벤에셀’이라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4. ‘여기까지’에 담긴 진짜 의미
여기서 “여기까지”는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른다”는 한계의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히 기대하지 못했던 곳까지, 심지어 우리가 철저히 무너졌던 그 수치의 마지노선까지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인도하셨다”는 감격의 고백입니다. 과거를 돌이키신 하나님은 앞으로의 미래도 반드시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5. 우리에게 요구되는 ‘에벤에셀의 안목’
겸손하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에벤에셀을 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곳은 거저 이름뿐인 장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은 단 한 번도 거두어진 적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손길을 기대하지 않았고, 다른 우상을 바라보느라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에벤에셀을 발견하는 안목과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은 이미 그곳에 선행(先行)하여 존재하고 있었고, 인간은 영적 철이 들고 나서야 비로소 그곳이 ‘에벤에셀’이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실패와 좌절의 터널을 지날 때는 고통과 후회에 매여 오직 나의 아픔과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인 눈을 떠보니 그 아프던 자리마저도 주님이 일하고 계셨던 은혜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의 중심에는 우리의 영원한 반석과 구원이시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이 친히 우리 인생의 에벤에셀, 즉 ‘참된 도움의 돌’이 되어주셨기에 우리는 비로소 영적 맹인 됨을 벗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 순간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며, 우리의 영원한 반석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의자리’가 ‘진짜 에벤에셀’로 드러나는 은혜가 매일 매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